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50)
콜럼버스의 진실, 신대륙의 발견 여러분들은 ‘콜럼버스’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인물은 어린 아이들까지 알 정도로 유명한 위인에 속해있습니다. 어린이 위인전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단히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 “탐험가, 항해가” “지금의 중남미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 이런 식 으로 알고 있지요. 어쩌다가 이런 식의 평가를 얻게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가장 크게 잘못 알려진 지식이 아닌가. 생각되어질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콜럼버스’는 과연 어떤 인물인지 그 진실을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콜럼버스’는 1451년경에 태어난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탐험을 떠나기 전 동생과 함께 지도를 제작 일을 하고 있..
아돌프 히틀러, 그 비참한 최후의 끝 유럽의 또 한 번의 재앙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먼저 희생을 치른 나라는 바로 ‘폴란드’였습니다. 당시 군사 동맹 조약을 맺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지요. 1939년 9월 결국 폴란드를 침공하여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그 때부터 히틀러의 독재적 야망이 커지기 시작했지요. 바로 직후에 국방장관 직을 겸임하면서 1940년 5월 프랑스까지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연합군 측은 제대로 된 반격조차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단합해있던 독일을 막을 수 있던 나라는 아무도 없는 듯했지요. 유럽의 정복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로부터 항복을..
아돌프 히틀러 "나는 잘못 되었지만, 세상은 더욱 잘못 되어있다." 올해 세계의 여러 국가에서 “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2차 세계 대전 종전 70주년’ 아마 이 기념적인 해를 씁쓸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일 겁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사람이 그 해당 인물이 되겠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인류 역사상 아마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요, 10대 아이들이 ‘스탈린’은 생소해도, ‘히틀러’라는 이름은 다들 익히 알고 있을 정도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히틀러’라는 이름을 이렇게도 잘 기억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틀러’를 기억하는 이유는 늘 따라다니는 명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 ‘학살자’, ‘악마’, ‘재앙의 원흉’ 등 수..
당태종 - 정관정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 시대 ‘Super China' 라는 말, 요즘 실감이 나시나요? 중국은 국방력, GDP, 인구 등 단순한 수치만으로도 이미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빠른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장력만큼은 기존 어떤 나라보다 월등히 빠르다는 점에서 향후 몇 년이 지난 시점에선 중국이 초일류 국가가 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죠. 중국은 매우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고, 엄청난 숫자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겠죠. 하나의 통일된 민족도 아닌 중국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고 정치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중국인들은 한 인물을 말합니다. ‘당태종 이세민’ 그가 바로 혼란스러웠던 중국을 하나로 통일하고,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한 인물입니다. 후에 청나라 시절 ‘..
찰스 다윈 - 진화론 진화론의 기본 바탕은 다윈 이전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 제기되어왔습니다. 철학자인 디드로와 루소 그리고,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과 라마르크 등 생물학자들도 연구를 계속해오던 상태였죠. 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실증적인 증거를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한 사람이 바로 ‘찰스 다윈’이 되겠습니다. 다윈은 풍부한 사실과 증거들을 가지고 진화론을 전개했고, 생물은 진화한다는 인식을 일반인들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당시 신학과 관련된 사상들이 주류를 펼치고 있는 터라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말이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죠. 그럼 다윈은 어떻게 ‘진화론’의 실증적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을까요? 다윈의 탐험은 1835년 9월 영국의 조사선 ‘..
닉슨 독트린 - 데탕트 시대에 따른 우리나라의 영향 ‘닉슨’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어떤 정치를 펼쳤을까요? 가장 유명했던 외교정책 중 하나를 뽑자면, 바로 ‘닉슨 독트린’을 뽑을 수 있겠습니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트루먼 독트린’ ‘닉슨 독트린’ ‘먼로 독트린’ ‘요시다 독트린’ 등 많은 명칭들이 붙어있는 이 ‘독트린’의 뜻은 쉽게 이야기하면 공식적인 공개선언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각 나라에서 향후 국제적으로 어떤 외교적 자세로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인지, 공개적으로 세계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죠. ‘닉슨’ 대통령의 외교정책 성격이 반영된 선언이 ‘닉슨 독트린’이 되겠습니다. ‘닉슨 독트린’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가 우리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서 알아보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당시 세계는 아직도 냉전 시대였습니다. ..
통조림의 역사-두 차례 치른 전쟁 지난 시간에 나폴레옹에 대해 다루면서, 한 가지 더 재밌는 사실을 다뤄볼까 합니다. 바로 '통조림'인데요? 가정 집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보관하기 조차 용이 합니다. 그렇다면, 이 통조림이 처음 사용되었을 때는 언제일까요? 통조림의 역사는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착안할 수 있습니다. 통조림이 처음 등장한 것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탁월한 스피드를 이용한 보병 전술로 유럽전역에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병사들의 음식 보급이었죠. 식량 전달과정에서 음식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자,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일종의 ..
나폴레옹의 몰락 - 워털루 전투 1815년 당시, 유럽은 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쟁이 끝날 무렵, 나폴레옹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서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유럽 국가 대부분이 오랜 전쟁으로 지쳐가면서, 이에 종지부를 찍기를 원하였죠. 그리하여, 결성된 것이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의 대규모 동맹군이었습니다. 이때, 그들에게 결점이 하나 있었다면, 아직 모든 국가의 군대들이 합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 틈을 놓치지 않았고, 필사적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합니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군이 합류하는 날에는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죠. 나폴레옹의 입장에선 영국군과 프로이센군, 그 중에서도 워털루에 진을 치고 있는 영국군을 격파해야만 승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