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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상식 사이

닉슨 독트린 - 데탕트 시대에 따른 우리나라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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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어떤 정치를 펼쳤을까요? 가장 유명했던 외교정책 중 하나를 뽑자면, 바로 ‘닉슨 독트린’을 뽑을 수 있겠습니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트루먼 독트린’ ‘닉슨 독트린’ ‘먼로 독트린’ ‘요시다 독트린’ 등 많은 명칭들이 붙어있는 이 ‘독트린’의 뜻은 쉽게 이야기하면 공식적인 공개선언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각 나라에서 향후 국제적으로 어떤 외교적 자세로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인지, 공개적으로 세계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죠.


‘닉슨’ 대통령의 외교정책 성격이 반영된 선언이 ‘닉슨 독트린’이 되겠습니다. ‘닉슨 독트린’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가 우리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서 알아보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당시 세계는 아직도 냉전 시대였습니다. 물론 ‘닉슨’ 시절은 여러모로 냉전이 고조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죠. 점점 냉전 분위기가 그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있었습니다. 소련 역시 ‘스탈린’ 다음으로 ‘후르시초프’가 미국에 대해 평화와 공존을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 이였는데,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자국민들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가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의 전쟁까지 감수하여야하느냐.” 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죠.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미국은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을 겪으면서 지칠 대로 지쳐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닉슨’ 행정부가 들어선지 8년 만에 ‘닉슨 독트린’을 괌에서 발표하게 됩니다. 이때 발표 장소가 ‘괌’이었기 때문에 ‘괌 독트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닉슨 독트린’의 내용은 기존 ‘트루먼 독트린’과는 대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2.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을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 대처할 것.

3. 태평양 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은 하지만, 과잉개입은 하지 않는다.

4. 원조방식을 강화하여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미국의 이런 태도 변화는 냉전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공산권에 대해 기존에 미국은 적극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면, 이는 아예 이러한 입장을 선회한다는 공식적인 발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vs소련이라는 커다란 체제 아래서 움직였던 여러 국가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세계 냉전 분위기는 완화되었습니다. 이를 ‘데탕트 시대’라고 하는데 데탕트의 뜻은 말 그대로 긴장완화상태를 뜻합니다. 큰 전쟁에 대해서 소련은 물론이고, 미국 역시 더 이상 손을 때겠다는 입장이 짙었죠.


이 같은 ‘닉슨 독트린’은 우리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북’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죠. ‘닉슨 독트린’에서 우리나라에 중요한 요인은 바로 ‘주한미군’ 감축입니다. 실제로 반이나 되는 병력을 감축시켰었죠.


‘주한 미군’ 철수는 우리나라, 북한, 미국 3자에게 매우 큰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침략 때문이었고, 미국 역시도 남북마찰이 경시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웃긴 것은 북한 역시 이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에게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남한을 차지할 만큼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자니 그동안 자신들이 외치던 ‘남한 괴멸‘이란 말이 부끄럽게 되는 모양새였죠.


결국 ‘주한 미군’의 완전 철수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심각할 정도로 병력이 감축되고 한국에서 손을 때겠다는 입장까지 갔으나 결국 일어나지는 않았지요. 전 시간에 말씀 드렸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기 때문입니다. 닉슨이 그 당시 그대로 대통령 직에 남아있었더라면, 분명히 우리나라에게 위기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 속에 미국은 남북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7.4 남북공동성명>을 진행합니다. 후에 ‘남북공동성명’이 남북관계 개선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 당시 양쪽 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성명한 것은 아닐 겁니다. 이유는 양측의 세력이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발판으로 <남북공동성명>을 이용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북한 측에서는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주체헌법을 김일성이 도입하면서 독제체제를 완성하게 됩니다. 남한 측에서는 잘 아시다시피 10월 유신을 통해 독제체제를 완성시키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은 그저 보기 좋은 허울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닉슨 독트린’ 그로 인한 ‘주한 미군’의 철수 -> 나라의 존망이 걸린 위기 -> 자주안보체제 강화의 필요성 -> 10월 유신.


큼직하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닉슨’이 실행한 외교정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보면, 외교정책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원칙과는 다르게 어떠한 수단으로 이용될만한 여지가 늘 충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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