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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상식 사이

찰스 다윈 -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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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기본 바탕은 다윈 이전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 제기되어왔습니다. 철학자인 디드로와 루소 그리고,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과 라마르크 등 생물학자들도 연구를 계속해오던 상태였죠. 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실증적인 증거를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한 사람이 바로 ‘찰스 다윈’이 되겠습니다. 다윈은 풍부한 사실과 증거들을 가지고 진화론을 전개했고, 생물은 진화한다는 인식을 일반인들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당시 신학과 관련된 사상들이 주류를 펼치고 있는 터라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말이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죠.


그럼 다윈은 어떻게 ‘진화론’의 실증적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을까요? 다윈의 탐험은 1835년 9월 영국의 조사선 ‘비글호에 탑승하면서 시작됩니다. 즉, 기존에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타 지역의 생태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이지요.


첫 지역은 남미지역에 있는 ‘갈파고스군도’라는 곳입니다. 다윈은 이 지역에 사는 ‘갈라파고스 핀치’라는 새가 각각의 다른 서식지와 먹이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이 ‘진화론’의 결정적인 단초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자세히 말씀 드리면, ‘핀치’의 주 먹이가 되는 씨앗이나 벌레들이 나무가 울창하거나 땅속 깊숙이 서식하는 곳에서는 ‘핀치’의 부리가 뾰족하고 길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딱딱하거나 큰 씨앗들이 많은 곳에서는 ‘핀치’의 부리가 뭉뚝하고 둥글했죠.


여기서 다윈은 원래 하나의 종이었던 ‘핀치’가 각각에 쳐한 환경에 따라 그에 맞게 적응하면서 여러 종으로 분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23년 동안 연구해서 나온 책이 바로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죠.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특정 종이 초기의 단순한 상태에서 다양한 종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을 ‘저연선택’이란 이론을 통해 설명합니다.


생존을 위한 적응, 이에 따른 변이는 계속 보존되는 경향이 있고, 자손에게 물려진다고 밝혔습니다. 즉, 뾰족한 부리 역시 다음 세대의 ‘핀치’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죠.


‘자연선택’ 이론과 더불어 한 가지 더 다윈이 제시한 것이 있다면, 바로 ‘적자생존의 원리’를 들 수 있겠습니다. 생존경쟁에서 후손은 점점 가장 좋은 종족으로써 태어나고, 생존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다윈의 주장은 당연히 당시 사회에서 적잖은 충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사회는 종교적인 영감에서 모든 사유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주장은 ‘창조론’에 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창조론’은 신이 다양한 생물을 처음부터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원숭이는 원숭이 / 사람은 사람 이런 식으로 애초에 그 종이 갈려 있는 거죠.


중요한 점은 제가 소제목에도 적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진화론’이 생물학, 과학의 분야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닙니다. 기존 종교적 사상이 지배적인 창조론적 세계관 속에서 탈피하게 되었죠.


역사와 사회 역시 환경에 따라 어떠한 조건이 달성되면 그에 맞게 발전한다는 진보적 세계관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들어봤을 법한 사상들이 모두 다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9세기 사회주의의 발전을 제시한 마르크스가 그러하였고, 멋진 신세계에서 유토피아 사상을 전파한 토머스 헉슬리가 그러하였습니다.


현재는 말할 것도 없이 유전자의 진화, 개량 품종의 개발 등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연구와 사상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다윈의 ‘진화론’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학설이 제기되었고, 계속해서 창조론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발견은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칠 만큼 아주 긴 기간 동안 우리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식을 바꾸지 못했다면? 우린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종교적 세계관에 영원히 갇혔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더 이상의 발전도 없고, 새로운 발견도 없었을 틀에 박힌 세계관 속에서 우리의 삶은 아마 끔찍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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